우리네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만두, 특히 겨울철 간식으로 남녀노소 즐겨 먹는 만두는 3세기 무렵 제갈량이 남만정벌이라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생긴 음식이라고 한다.
※제갈량(181년 7월 23일 ~ 234년 8월 28일)은 삼국시대 촉한의 모신. 자는 공명(孔明)이며, 별호는 와룡(臥龍), 전란의 시대, 형주의 초야에서 지내던 중 제갈량의 나이 27세 때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세상에 나온 제갈량은 재략과 웅재로써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제업을 이룸
만두(饅頭)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펴 얇게 만든 만두피 속에 야채와 고기 등의 소(음식)를 넣고 빚어 찌거나 삶거나 튀긴 음식이다. 안에 넣은 음식에 따라 야채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으로 부르며, 익히는 방식에 따라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등으로 부른다. 만두피를 곡물가루 외에 생선으로 만든 어만두와 다진 꿩고기로 빚은 꿩만두도 있다. 겨울철에는 주로 만두를 장국이나 떡국에 넣어 먹고, 여름철에는 찐만두인 편수(네모진 만두)나 규아상(해삼 모양으로 빚은 만두)을 많이 먹는다.
만두는 삼국지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야사에 의하면, 촉한의 제갈량이 운남 지역을 정벌하고 오는 길에 노수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며칠동안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까지 배웅을 나온 맹획에게 이에 대하여 묻자, 맹획은 수신(水神)이 화가 나서 그런것이며 풍습에 따라 마흔아홉의 사람의 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내고 이를 노수에 가라앉히면 풍랑이 멎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이 그것은 인의(仁義)가 아니라고 하여 밀가루반죽에 돼지고기와 돼지피 등으로 속을 채워서 사람머리 모양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이를 노수에 가라앉히자 금세 심한 풍랑이 멎고 촉군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만두(蠻頭, 만족의 머리)였으나 요리이름으로는 적당치 않다고 하여 현재의 만두(饅頭)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두가 삼국지이전에도 비슷한 종류들이 존재했다는 지적이 있으므로 직접적인 유래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만두의 이름에 끼워맞추기 위해 생긴 일종의 설화에 가깝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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