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
진시황제의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초나라와 한나라가 다투다가 한나라로 통일되었다.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4백년이 지났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져 혼란은 극에 달해 황제권은 약화되고 측근인 내시들의 권세가 커지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천하는 혼란스러워진다. 각지에서는 영웅호걸들이 뜻을 뭉쳐 일어서게 되고 마침내 화북 조조의 위(220~265), 서촉 유비의 촉(221~263), 강남의 손권이 이끄는 오(222~280)의 삼국시대를 가져왔다. 이때가 '삼국연의'의 배경이자 무대이다.
※진시황제(기원전 259년 1월 ~ 기원전 210년 음력 9월 10일)는 진나라의 제31대 왕이며,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이름은 영정(嬴政)이며, 조나라에서 출생하였기에 조정(趙政)이라고도 한다. 진 장양왕 영자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세도가 대단하던 조나라의 상인 출신의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적 배경
후한도 말기에 이르자 황제 측근인 환관과 외척간의 대립이 격화된다. 특히 12대 영제가 등극하면서 이 대립은 절정에 이르러 유혈사태가 거듭된다. 영제는 이러한 환관과 외척간의 유혈대립에 기가 질려 정치에 흥미를 잃는다. 정치는 오로지 환관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관직을 파는 등으로 축재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황제가 매관매직을 하고 있는데 나라가 온전할 까닭이 없는 법. 결국 정치의 부패는 민중의 불만을 불러왔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사회가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종교에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후한 말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하북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태평도(太平道)', 한중을 중심으로 퍼지는 '오두미도(五斗米道)' 등이 민중, 특히 농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 종교 가운데 특히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장각을 교조로 하는 '태평교'였다. 장각(張角)은 184년(中平 원년)에,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다. 누런 하늘이 온다. 갑자년이 되면 천하는 대길이다!" 라는 주장을 앞세워 신도 수십만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스스로 천공장군이라고 호칭하면서 민중을 모아 놓고, "한나라의 운명은 이미 다했다. 성인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너희는 의인을 좇아 태평시대를 즐겨라." 라고 선동했다. 장각의 연설에 호응한 민중이 무려 40만-50만명. 이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누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맸기 때문에 '황건적의 난'이라 부른다.
태평교의 교조인 장각과 그의 형제 장보(張寶), 장량(張梁)은 전국시대의 조나라 땅에서 태어났다. 맏이인 장각은 어릴 적부터 수재로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과거에는 낙방하고 말았다. 어느날 약초를 캐려고 깊은 산속을 헤매다가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짚은 남화노선(南華老仙)을 만난다. 그 노인은 장각에게 '태평요술'이라는 책을 주면서, "이 책을 잘 읽고 익혀 세상을 구하고 도를 개척하여 선을 베풀어라." 하고 당부했다. 그날 이후 장각은 그 책을 탐독하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비를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 도술까지 깨쳤다고 한다. 때마침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장각은 두 동생을 데리고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고,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태평도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황건적의 기반을 구축한 것이었다.
황건적들은 각지의 관아를 불지르고 태수 현령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다. 한왕조는 겁에 질려 벌벌 떨 뿐 실권을 잡고 있는 환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영제는 환락과 재물에 눈이 어두운 황제였으므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황후 하씨의 오빠 하진(何進)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토벌군을 편성했다. 하진은 군사적 재능은 물론 통솔력도 없는 사람이었으나 노식(盧植), 황보숭(皇甫嵩), 주준(朱雋) 등을 중심으로 삼군을 편성하여 황건적을 토벌한다.
떠오르는 해처럼 기세좋게 진격을 계속한 황건적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커다란 약점이 있었다. 숫자는 비록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통솔자가 없으면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모르는 무리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황건적에게는 대군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과 전략에 뛰어난 참모가 없었다. 초기에는 진격을 계속할 수 있었으나 관군이 출동하면서부터 모든 약점이 한꺼번에 노출되어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조인 장각이 병으로 죽는다. 결국 그해 10월 황건적의 난은 완전히 평정된다.
황건적의 난 평정에는 나중에 '삼국지'를 수놓게 되는 많은 영웅들이 참전하고 있다. 유비, 손견, 조조, 동탁, 원소 등등... 특히 조조는 황건적 1만여 명의 목을 벤 공적으로 제남지방의 재상으로 임명된다. 손견도 난 평정 뒤 별부사마(현대의 연대장쯤)가 된다. 반면 유비는 별다른 상을 받지 못한다. 말하자면 조조, 손견에 비해 몇 걸음이나 뒤처진 것이다.
이리하여 드디어 삼국지의 막을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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